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시기,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분리된 시대처럼 다루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세 시기는 연속된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변화 속에는 우리가 쉽게 외면하거나 불편해하는 진실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한말, ‘나라’라 부르기 어려웠던 시기
구한말, 즉 조선의 말기와 대한제국은 국가 시스템으로서 매우 취약하고,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불평등과 부패가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귀족층이 아닌 일반 백성들은 인간다운 삶조차 보장받지 못했고, 위생과 의료는 전무한 상태였죠.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에도 "생명에 대한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표현될 정도였습니다.
조선 말 양반 남성의 기대수명은 32.58세에 불과했고, 천민 계층은 그보다 훨씬 낮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염병, 기아, 미신이 판치던 이 시대에 한반도 주민의 삶은 말 그대로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모순된 근대화의 시작
나라를 빼앗긴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주민들은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일제 총독부는 가장 먼저 위생과 보건을 정비하며 전염병을 관리하고, 예방접종을 의무화했습니다. 병원이 들어서고, 의료 접근성이 개선되며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농업 기술을 도입해 식량 수확량을 크게 늘렸고, 이로 인해 기아로 인한 사망이 줄어들며 생활이 안정화됩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저축을 시작했고, 개인의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분제 철폐와 법치주의의 도입
구한말까지 유지되던 신분제, 노비제도, 고문과 연좌제 등은 근대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1894년 갑오개혁과 이후 일제강점기를 통해 이러한 제도들은 하나씩 철폐되며, 개인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총독부는 근대적 사법 제도를 도입하고, 누구든지 변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안창호, 여운형, 이단 등 독립운동가들조차 재판에서 국선 변호인을 통해 정당한 절차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근대적 법치국가로의 기반을 마련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교육과 인프라, 근대적 시민의식의 출발점
구한말에는 소수 상류층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일제는 초등교육을 일반화하고 고등교육기관과 전문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초근대적 지식인 계층이 형성되었고, 각종 병원, 우체국, 철도, 전화국 등의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생활 개선을 넘어 근대 시민의식과 인권 의식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신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복잡한 현실
이러한 사실들을 언급하면 일부는 "친일 미화" 혹은 "신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감정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왜곡되어선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들이 일제의 착취 속에서도 실제로 존재했던 현상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건강한 역사 인식이 가로막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일제의 제국주의는 명백히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강제 병합,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모두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기 이루어진 사회적 발전까지 모두 부정하는 것은 역사 전체를 감정의 도그마로 몰아가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제 피해자 중심의 단선적인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시선으로 입체적이고 성숙한 역사 인식을 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한국 사회가 더욱 건강한 담론을 펼칠 수 있고, 또 다른 ‘불편한 진실’에도 지성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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